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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취업/인터뷰

트러스톤 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 지철원


연세대학교 금속공학과 학사, 석사

반도체 전문 기업 근무

트러스톤 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


 

H: 안녕하세요?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위원님의 이력을 보니 공대 출신 연금포럼 연구위원이신데요.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지철원(이하 지):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연세대학교 금속공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를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공대생이 그렇듯이 학업을 마친 후 자연스럽게 관련 업계로 취업을 하게 되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군대까지 정상적으로 마치고 나니 30살에 처음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미국계 반도체 회사의 기술연구소에서 7년 정도 근무를 하였습니다. 그 후 동종 업계로 이직을 하여 5,000명 정도 직원이 있는 하청업체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1년 정도 근무했을 무렵 뜻밖의 대학 선배의 제의를 받게 되고 선뜻 금융상품 판매회사로 전직을 결심했습니다. 처음에는 다양한 금융 상품들을 직접 판매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트러스톤 자산운용사에서 연금포럼 연구위원으로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은퇴설계와 장기투자에 관련된 강의를 하고, 요청이 있으면 신문 및 잡지에 가끔 기고도 하고 있습니다.



제조업의 미래와 엔지니어의 처우에 대한 비전을 찾지 못해 이직 결심


H: 보통 공학석사를 하신 분들은 기업의 연구소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면 은퇴까지 그 분야에 머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떤 계기로 이직이 아닌 전직을 하게 되셨는지요?


: 전직을 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제조업에서 비전을 찾지 못한 것과 둘째 엔지니어의 처우 개선이 힘들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모든 업종에서 몸값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90학번인데, 제가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공대 학생의 정원을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과를 예로 들면, 저는 80명이 정원일 때 입학했는데, 이 후 100, 120명 이런 식으로 늘리다가 결국 학부제를 통해 더 많은 인원이 입학을 하게 됩니다. 공급이 늘어나는 것이죠. 제 자신의 몸값이 오를만하면 인력 공급을 늘려 임금 상승을 억제할 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 기술직에 대한 대우는 의사나 금융권 종사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제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지지 않으면 제조업은 결국 인건비 싸움입니다. 누가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냐에 따라 기업의 이익이 결정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사는 나라들은 제조업이 산업의 중심이 되기 어렵습니다. 저는 결국 우리나라에서도 제조업의 비중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조업에 계속 남아 있는 것보다는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이 더 유리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이런 판단에는 금융권에 계신 장인어른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첫번째 직장에서 일을 하던 중 잠시 반도체의 업황이 안 좋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회사에서는 연구원이던 제게 두달 간의 안식 휴가를 주었습니다. 당시 장인어른의 소개로 잠시 교보증권에서 인턴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인턴 기간이 끝난 후에 바로 금융권으로 전직을 하지는 않았으나, 이 때 금융권을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고, 이를 바탕으로 두번째 회사 이직 후 일년 만에 금융회사로 전직을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H: 인턴 경험을 바탕으로 과감한 베팅을 하셨다고 생각됩니다. 금융권에도 다양한 포지션이 있을 수 있는데요, 어떤 업무로 옮기시게 되었나요?


: 저는 다양한 금융 상품들을 파는 세일즈 분야로 전직하였습니다. 금융회사에서 취급을 하는 펀드, ELS, 보험 등을 외판 형식으로 일일이 찾아다니며 팔았던 것이죠. 물론 공장 관리자에서 금융권으로 전직을 한다고 하면 근사하게 책상에 앉아 일을 하기 위해 이직했다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본인이 쌓아 놓은 기반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면, 가장 진입이 쉽고 정직하게 노력하는 만큼 성과를 볼 수 있는 분야는 세일즈라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세일즈. 정직과 성실이 가장 큰 무기


H: 처음으로 세일즈를 시작하실 때에는 어려움도 많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 금전적인 면에서도 궁금합니다.


: 우선 세일즈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일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는 세일즈맨이 돈에 환장하는 것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고객의 입장이 아닌 회사의 입장 혹은 세일즈맨의 입장에서 수수료나 보수가 비싼 상품을 권유하거나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쉽게 말해 꼼수를 부리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꼼수가 아닌 올바른 방법으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계약을 하고자 했고, 짧은 시간에 성공적으로 업계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지인을 통해 새로운 고객을 많이 소개받을 수 있었습니다. 신장개업 효과를 누린 것이지요. 하지만 그 고객들을 통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정직과 성실입니다. 그리고 옮긴 후 실제로 소득이 올라가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세일즈를 잘 했다는 이야기죠.

물론 전직 이후에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었습니다. 특히 세일즈에서 강의로 사업을 전환하던 시기에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 고난을 통해 저는 이후에 저에게 큰 도움이 될 엄청난 발전적 변화를 겪게 됩니다.


자산관리 상담료를 받는 사업 모델"을 찾다보니 강의 시작


H: 세일즈를 하시다가 금융 강의를 하시게 되었잖아요. 원래부터 강의에 비전이 있으셨나요?


: 사실 저는 강의에 비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산관리 상담료를 받는 사업 모델에 비전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융 세일즈맨이 돈을 버는 방법은 수수료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상담이라는 서비스에는 비용을 청구하기 어려운 현실적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궁극적으로 고객과 세일즈맨이 서로 윈-윈 하기 위해서는 상품이 아닌 중장기적 금융 플랜에 대한 상담료를 받는 사업 모델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현실화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금융 상품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게 된 것이죠. 일대일 상담은 아니지만, 강의 역시 고객들에게 금융 계획에 대한 상담을 해주는 것과 같고, 이를 통해 받게 되는 강의료는 제 상담에 대한 수수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강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상품 세일즈와 강의를 병행하였습니다. 이때가 아마 전직을 한 후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두 가지 일을 하게 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판매 수수료는 줄었고, 인간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제가 선의로 하는 일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을 대하게 되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었습니다. 이 시기를 통해 제 인생관과 가치관 모든 것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제가 계속 반도체 업계에 남았더라면 안정적일 수는 있었겠지만 이런 큰 변화를 절대 겪지 못했을 거라 확신합니다.

처음 들어갔던 금융 회사를 나와 1인 기업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미래에셋에서 은퇴를 하신 장인어른 (*당시 부회장으로 은퇴한 강창희님)이 세우신 은퇴 자산 컨설팅 회사인 미래와금융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상품 판매를 중단하고 본격적으로 금융 컨설팅 및 강의에 치중하기 시작했습니다.


H: 그런데 지금은 소속이 트러스톤 자산운용이신데요. 다시 회사를 옮기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 제가 근무를 하고 있는 트러스톤 자산운용의 황성택 사장님은 이 업계에서는 입지전적인 분입니다. 맨손으로 회사를 세워 15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운용하는 회사로 키워내셨으니까요. 기업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깨인 생각을 갖고 계시죠. 처음에는 사회공헌을 위한 비영리법인을 하나 만들려고 하셨는데요. 이런 비영리기관을 만드는데 법 절차가 너무 까다로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미래와금융을 그대로 흡수하여 회사 내 사회 기여 부서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이 때 자연스럽게 소속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H: 1인 기업에서 회사 소속으로 바뀌게 되면 월 소득은 어떻게 되나요? 회사 소속이 주는 장점이 있을까요?


: 연봉은 계약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저 같은 경우에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좀 더 유리해 진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많은 양보를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회 기여 부서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기본급은 회사에서 지급을 받습니다. 출장강의를 다닐 때 발생하는 부대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 대신 강의료는 제가 갖습니다. 참고로 1년에 100개 이상의 강의를 하고 신문 및 잡지에 기고하거나 방송 출연을 하면 수고비를 조금 받습니다. (*강의료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회당 2시간 기준 평균 50만원~100만원 선으로 책정됨)

하지만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회공헌적 활동이기에 강의만으로 큰 소득을 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지속적으로 다음 단계는 무엇으로 가져가야 하나 고민하고 찾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금융상품 상담료를 받자는 변화의 움직임이 생기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업계에 진입을 하며 고민해왔던 비즈니스 모델이 곧 현실화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컨텐츠를 가지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H: 위원님의 직업을 보면 금융 상품 상담자이자 강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업종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까요? 또 어떤 자질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 어떤 직업군의 일을 선택할 때 자질이라는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강의를 통해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지만, 강사가 제 직업이라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 강의 스킬을 늘리기 위해서는 자질보다는 끊임없는 자기개발 노력과 많은 강의 횟수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리고 스킬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만 갖고 있는 컨텐츠라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업무를 기존의 있던 직업군으로 분류하기는 어렵습니다. “취직이라기 보다는 창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회사에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승락받으면 실행합니다. 제일 비슷한 영역은 PB(Private Banker)지만 역시 제가 하고 있는 일과는 다른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을 상대하기 보다 대중을 상대로 한 홍보를 하고 있거든요.

결국 누가 하는 일을 따라 하기 보다는 본인의 삶을 통해 쌓은 경험을 믿는 것이 중요한 자질이지 싶습니다. 저는 금융 상품 세일즈를 통해 고객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고객 입장에서 조언을 해주고 계획을 수립해 주는 것이라 믿었고, 그것을 제 비즈니스 모델로 삼았습니다. 강의라는 수단을 통해 현실화 해나가고 있지만, 수단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낮아짐, 놓음, 가족과의 소통이 도전의 원동력


H: 지위원님 말씀처럼 누군가가 따라하기에는 어려운 분야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면 지위원님과 같이 본인의 커리어를 바꾸고자 하는 젊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제가 금융 세일즈를 시작했던 나이는 38살입니다. 기업의 과장급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고, 기혼이었으며 자녀가 있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매우 두렵고 떨리는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인생에 대해, 그리고 미래 비전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 고민을 통해 과감히 새로운 길로 방향을 바꿨고 지금은 대단히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 스스로 낮아질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낮아지는것입니다. 처음부터 대접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제가 이직하고 나서, 관리하던 회사에 가서 금융상품 세일즈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 스스로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이런 훈련을 스스로 하고 나니,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두번째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당장 다음달에 나가야 하는 모기지, 아이들 학원비를 고민한다면, 혹은 지금까지 쌓아놓았던 사회적인 명성과 인정을 포기하지 못할 것 같다면 결코 어떤 일도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인생에서 손에 쥔 모든 것을 놓을 때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생각합니다.

세번째로 배우자와의 소통입니다. 만약 제 아내가 반대를 했다면 저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아내와 커리어와 가족의 미래에 대해 심도있는 대화를 해 왔기에, 제가 결정을 했을 때 아내는 믿고 지지해 주었습니다.

아직 젊고 똑똑한 후배들이 스스로 인생에 질문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서 있는 길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고 스스로를 테스트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H: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제 인생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번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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